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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Class

<음악가 이야기> Moritz Moszkowski 모리츠 모슈코프스키 (1854 ~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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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itz Moszkowski

모리츠 모슈코프스키 (1854 ~ 1925)

 

폴란드의(독일계 유태인)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그는 1854년 프로이센 브레슬라우

(지금의 폴란드 브로추아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그는

11살에 드레스덴 음악원에 입학했다.

 

베를린으로 이사한 후 Stern음악원에서 공부하였고

에두아르드 프랑크(Eduard Franck)에게 피아노를,

프리드리히 키엘(Friedrich Kiel)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이미 13세 때 피아노 5중주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1873년 스승이었던 테오도르 쿨락(Theodor Kullak)

그의 연주에 감동받아 교사로 추천하였고

1896년까지 베를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은 프랭크 댐로치(Frank Damrosch),

요세프 호프만(Jozef Hofmann), 요아퀸 닌(Joaquin Nin),

블라도 페르뮈테르(Vlado Perlemuter),

에르네스트 셸링(Ernest Schelling)

요아퀸 투리나(Joaquin Turina) 등이 있다.

 

 

 

 

 

1873년 베를린에서 첫 번째 연주회를 가진 후

유럽 최고의 피아노 비르투오소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재능 있는 바이올린 연주가이기도 하였으며

살롱용의 피아노소품을 작곡하여

작곡가로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1897년 그의 명성이 자자할 때 베를린을 떠나

결혼한 누나와 함께 파리에서 오래 살면서

교육과 작곡하는 일에만 전념하였고

1899년 베를린 예술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쇼팽 연주에 뛰어났던 그는

1880년대 중반 신경과민으로 연주 활동을 접고

시적인 감응을 고취시키는 낭만적인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살롱 연주용의 독주곡과 듀엣 곡들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고

작곡활동을 통해서 충분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의 동생과 결혼했는데

바람난 아내로 인해 남은여생을 괴로워하며 보냈다.

 

독일의 채권에 투자를 했던 그는 세계1차대전으로 인해

실패하며 전 재산을 잃었다. 가족은 모두 죽고 병까지 얻어

힘겹게 살았다. 그를 위해 동료 음악가이자 친구들이

파리에서 자선 음악회를 열어 주었고

14명의 피아니스트가 참석해 공연하였다.

 

그러나 자선 공연으로 모여진 기부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1925년 파리에서 위암으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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